명절 풍습

‘홍어’로 제사를 지낸다, 목포의 독특한 설날 풍습

mystory35663 2025. 7. 8. 20:23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며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대개 전국에서는 떡국, 전, 나물, 갈비찜 같은 익숙한 명절 음식이 상에 오르지만, 전라남도 목포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제물이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홍어’다.

 

바다 내음과 정성이 깃든 설날, 목포의 특별한 상차림

 

홍어는 특유의 진한 향과 깊은 발효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목포 사람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명절 음식이자, 효심과 지역 정체성이 담긴 상징적인 존재다. 낯선 사람에게는 의외로 느껴질 수 있지만, 목포에서는 홍어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엄숙한 전통이다.

이러한 제사 문화는 단순히 음식의 차별성에 그치지 않는다. 조상에 대한 예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삶의 방식, 그리고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 문화가 모두 녹아 있다. 이 글에서는 목포 지역 설날 풍습 중 하나인 ‘홍어 제사’의 기원과 의미, 상차림 절차, 음식의 상징성, 현대 사회 속 변화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그 안에 담긴 따뜻한 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바다와 함께한 삶의 흔적 – 왜 홍어가 제사상에 올랐을까?

목포는 오랜 세월 동안 바닷길의 요충지로 기능해 온 항구 도시다.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예부터 다양한 수산물이 풍부하게 유입되며 독자적인 해양 식문화를 형성해왔다. 그 중심에는 바로 홍어가 있었다.

홍어는 다른 생선과 달리, 삭혀서 먹는 특이한 발효 과정을 거친다. 과거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육지에서 보관이 어려웠던 대부분의 해산물과 달리 홍어는 삭힐수록 풍미가 깊어지는 특성 덕분에 장거리 운반이 가능했고, 오랜 기간 저장도 쉬웠다.

이러한 보관성과 유통의 편리함 덕분에 홍어는 남도 전역에서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고, 목포에서는 자연스럽게 명절 제사상에 오르는 주요 제물로 자리잡았다. 특히 설날에는 조상께 정성과 효심을 다하는 의미에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수록 예를 갖춘 것으로 여겨졌다. 삭힌 홍어는 손질과 숙성이 까다로워, 그 자체로 정성의 상징이 되었고, 조상의 입맛을 맞추려는 후손들의 마음이 담긴 음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육류 중심이 아닌 해산물 중심의 남도 음식 문화에서, 홍어는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닌 문화적·정서적 제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목포의 설날 제사상 – 고소한 홍어와 함께하는 조상의 식사

목포 지역의 설날 제사상에는 일반적인 제사 음식 외에도 홍어회, 홍어찜, 홍어무침 등 다양한 형태의 홍어 요리가 정갈하게 차려진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바로 ‘삭힌 홍어회’다. 이는 오랜 시간 저온에서 숙성시켜 발효시킨 뒤, 차례 당일에 맞춰 손질해 접시에 정성스럽게 올린다.

홍어를 제사상에 올리는 행위는 단순히 지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을 넘어, 조상의 취향과 기호를 기억하고 존중하는 일로 여겨진다. 목포 사람들은 이를 ‘제사의 진심’이라 표현하며, 그 정성과 정서적 연결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후손이 조상의 미각을 떠올려 상을 차리는 일은, 단절된 시간이 아닌 공감과 소통의 연속선상에 서 있는 실천이다.

제사를 마친 후 가족들이 둘러앉아 차례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은 이 풍습의 또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홍어와 막걸리를 곁들이는 식사는 단순한 식음이 아닌, 조상과 현재를 잇는 정서적 의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강렬한 향에도 불구하고, 이 풍습은 세대를 이어가며 후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가족 중심의 문화적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과 함께 변화하는 모습 – 현대 목포의 설 문화 속 홍어의 자리

현대 사회에서는 전통 제사 문화가 간소화되고 있으며, 목포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홍어를 중심으로 한 설날 풍습은 여전히 지역민들에게 강한 상징성과 감성을 지닌 문화로 남아 있다. 젊은 세대 중 일부는 삭힌 홍어의 강한 향에 적응하지 못해 제사상에서 생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가정에서는 최소한의 양이라도 정성스럽게 상에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 삭힌 홍어를 택배로 주문하거나, 대형 마트에서도 설날 시즌에 맞춰 전통 발효 홍어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타지에 거주하는 목포 출신들이 고향의 제사 풍습을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더불어 홍어를 둘러싼 설날 문화는 단순한 음식 전통을 넘어, 향토성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실천으로도 해석된다. 바다에서 얻은 음식으로 조상을 기리고, 그 전통을 이어가려는 문화적 시도는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향으로 기억되는 조상의 정,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

홍어로 제사를 지내는 목포의 설날 풍습은 단순한 ‘지역의 특이한 음식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 정성, 기억, 존경이 모두 담긴 전통이며, 바다와 함께한 삶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강한 향을 품은 삭힌 홍어는 낯선 이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목포 사람들에게는 조상의 품처럼 따뜻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설날 아침 홍어를 손질하며 조상과 마음을 나누는 그 행위는, 음식을 넘어 삶과 삶을 잇는 정서적 의식이 된다.

언젠가는 이 풍습이 점차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향기와 정성은 후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설날마다 고향과 조상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음식은 단순한 영양분이 아니라, 사랑과 기억, 그리고 삶을 이어주는 또 다른 언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