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습

남해와 동해의 용왕제, 바다를 다스리는 신에게 바친 의례

mystory35663 2025. 7. 15. 06:58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입니다. 이 지리적 특성은 곧바로 국민들의 삶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남해와 동해에 인접한 지역 주민들은 예로부터 어업과 해상 교역에 의존하며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그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양면적인 속성은 바다를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존재 자체가 신성하고 초월적인 어떤 힘을 지닌 ‘신’으로 인식하게 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신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의례의 형태로 구체화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용왕제’입니다. 용왕제는 바다를 다스리는 신인 용왕에게 제물을 바치고 마을의 평안과 풍어(풍부한 어획)를 기원하는 민속 제례입니다. 남해와 동해 연안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이 제사가 열리며, 제사에 앞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함께 준비하고 참여하는 공동체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바다를 마주한 민중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용왕제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바다를 중심으로 한 삶의 방식이자 신앙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용왕은 누구인가 – 신화와 민간 신앙 속 바다의 신

용왕은 한국 민간신앙에서 물의 신이자 바다의 통치자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전통적으로 용왕은 동해 용궁의 지배자이며, 바다뿐 아니라 강, 호수, 계곡 등 수계(水系)를 다스리는 신으로도 인식됩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용은 물과 관련된 초월적 존재로 등장하며, 이는 불교와 도교, 무속이 혼합된 형태의 복합 신앙 구조로 발전하였습니다.

 

바다를 마주하며 살아온 사람들

 

한국의 무속에서는 용왕을 ‘용신(龍神)’이라고도 부르며, 흔히 푸른 비늘을 가진 신령스러운 존재, 용궁에서 인간 세상의 바다를 살펴보는 초월자로 묘사됩니다. 특히 제주도의 해신제나 동해안의 용왕제에서는 용왕이 어민들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존재로 여겨지며, 제사 없이 바다에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간주됩니다. 용왕은 때로는 노여움을 풀어야 하는 존재로, 때로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양면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민속 설화 속에서도 용왕은 종종 자신의 딸을 인간과 결혼시키거나,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신화는 인간과 신, 자연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반영하며, 용왕제를 단순한 제례가 아닌 신과의 소통 방식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지역별로 다른 용왕제의 모습

용왕제는 전국적으로 존재하지만, 특히 남해안과 동해안 지역에서 그 형태가 뚜렷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의식의 절차와 구성, 제사의 대상, 제물의 종류 등이 다소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공통점은 모두 바다의 평온과 마을의 안전, 풍어를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 통영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7월 사이에 용왕제를 지냅니다. 제사를 올리는 장소는 보통 포구나 갯바위, 또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절벽 위입니다. 이때는 마을 어촌계가 주도하여 제를 준비하고, 상징적으로 살아 있는 생선, 과일, 술, 떡 등을 차려 바다에 던지는 의식이 포함됩니다. 이 지역에서는 용왕을 ‘큰 할아버지’나 ‘해신’으로 부르며 매우 공경합니다.

또한 강원도 삼척과 울진, 동해 등 동해안 지역에서는 ‘해신제’, ‘용왕굿’이라는 명칭으로 유사한 의례가 전해집니다. 특히 삼척에서는 무당이 제를 주관하며 굿과 함께 진행되는 신령제 형식이 일반적입니다. 무당은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바다의 분노를 달래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민속신앙과 무속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역 명칭 제사 시기 제의 형식 주용 특징
경남 통영 용왕제 음력 2월, 7월 등 마을 공동 제사 / 포구나 갯바위에서 진행 어촌계 중심의 제사, 생선과 술을 바다에 바침
강원 삼척 용왕굿 / 해신제 음력 정월 또는 3월 무당이 진행하는 굿 형식 + 제사 무속 중심, 신과 교감하는 의식 포함
경남 남해 해신제 / 용신제 음력 정월 또는 매년 봄 공동체 제사 + 문화재 행사 형태 지역 축제화, 전통 보존과 관광 연계
제주도 수망당 굿 불특정 (필요 시 진행) 무속 굿 중심의 제의 여성 중심, 바다할미 신앙 포함
울진, 동해 용왕제 / 해신제 주로 봄철 간소한 제사 + 주민 합동 기도 풍어 기원과 안전 항해 중심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제사

용왕제는 단순히 옛사람들의 미신적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맺어온 긴밀한 관계를 확인시켜 주는 문화적 상징입니다. 바다는 인간에게 생명을 제공하는 자원이자, 언제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협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특성은 인간이 바다를 일방적으로 정복하려 하기보다는, 존중하고 공존하려는 방식으로 제사라는 문화를 발전시켜 온 배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지역에서 용왕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 제사가 단지 신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상징적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의 날은 마을 사람들에게 일종의 축제이자, 세대를 잇는 교육의 시간이 되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바다의 소중함, 조상의 삶의 방식, 공동체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 환경 보호와 해양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용왕제는 현대적인 맥락에서 생태적 전통 문화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어만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용왕제는 무엇을 남기는가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용왕제는 과거와 동일한 신앙의 힘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문화재로 보존되거나, 축제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신앙심이 살아 있는 실질적 제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여러 지역의 용왕제를 국가 또는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전통 신앙의 다층적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또한 용왕제는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용왕제를 재구성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에게는 한국 고유의 민속과 자연 숭배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볼거리로서 소비되지 않도록, 제의 본래의 의미와 지역 공동체의 정신을 보존하는 방식의 전승이 필요합니다.

결국 용왕제는 과거 어민들이 바다의 신에게 바친 제사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공동체적 삶의 지혜, 그리고 전통과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준 생명의 은혜를 기억하며, 신과 사람, 자연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키는 문화적 유산으로서 용왕제는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