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습

오름에 오르는 이유 – 제주인의 자연신앙과 오름 제례

mystory35663 2025. 7. 27. 07:21

제주도에는 360개 이상의 오름이 분포하고 있다. 오름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기생화산으로, 지리적으로는 작은 언덕이나 봉우리로 분류되지만,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제주의 오름은 각 마을과 자연을 수호하는 존재이며, 신령이 깃든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오름에 오른다’는 행위는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고 신에게 자신의 바람을 전하는 행위였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오름 하나하나에 이름과 전설, 그리고 제례가 존재한다. 일부 오름은 마을의 수호신이 머무는 성소로 여겨지며, 오름 정상에서 해마다 마을 공동체가 모여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이런 문화는 제주가 유교적 조상 숭배 중심의 본토 신앙과는 달리, 자연 그 자체를 신격화하는 자연신앙의 전통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름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자, 사람과 신의 경계를 허무는 통로였으며, 제주의 정신문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오름, 단순한 지형이 아닌 신성한 존재

 

자연을 신으로 모시는 제주의 무형 신앙 체계

제주의 신앙은 특별하다. 하늘이나 절대적 존재보다는 구체적이고 체감 가능한 자연 현상에 신성을 부여한다. 바람, 바다, 바위, 나무, 그리고 오름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요소들이 곧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마을마다 자신들만의 ‘당오름’ 혹은 ‘신성 오름’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거문오름, 다랑쉬오름, 따라비오름 등이다. 이 오름들에는 고대 제례터나 봉분, 신당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실제로 과거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제사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제주는 조선시대에도 국가 주도의 제례 외에, 민간 차원의 자연신앙이 강하게 유지된 지역이었다. 오름 제례는 제사이자 기도이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의식이었다. 특정 시기에 오름에 올라 바람을 달래거나, 마을의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는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민속행위가 아닌 제주인의 세계관 그 자체였다.

 

오름 제례의 절차와 공동체적 의미

오름 제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다. 오름 제례가 열리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움직였다. 정해진 날짜가 되면 주민들은 새벽부터 준비에 들어가고, 제물을 마련하며 마을의 원로들과 무속인(심방)이 함께 의식을 주관했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밥, 떡, 술, 생선, 과일 등이 올랐고, 심방은 신에게 제의의 시작을 알리는 주문을 읊으며 오름 정상까지의 길을 안내했다.

정상에 도착한 이들은 오름을 둘러보며 간단한 정화 의식을 거친 후 제단 앞에 제물을 차렸다. 이어 심방의 구음, 방울 소리,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민들은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모아 각자의 소망을 빌었다. 의식은 장중하면서도 인간적인 분위기였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 조용히 바람을 맞으며 자신만의 소원을 중얼거리는 청년, 오름의 능선을 따라 조심스레 걷는 아이들. 모든 장면은 제례가 단지 종교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의식임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관광지가 된 오름, 신성함은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 제주의 오름은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억새와 초원,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은 많은 여행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오름의 문화적·신앙적 의미는 점차 잊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오름에서는 더 이상 제례가 열리지 않으며,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은 관광객의 발자국으로 마모되고 있다. 누군가는 풍경만 보고 떠나고, 누군가는 오름을 단지 ‘인스타 감성 포토존’으로 소비한다.

물론 오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오름은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그리고 신의 경계가 흐려지는 제의적 공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름 제례는 단지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넘어, 인간이 자연 앞에 겸손할 수 있는 장치였고, 공동체가 마음을 모으는 기제였다. 관광이라는 현대적 소비 형태가 이러한 신성함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도록, 문화적 재해석과 존중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오름을 다시 신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오름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계절의 바람을 맞고, 억새를 흔들며, 누군가의 기도를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비록 제례의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몇몇 마을에서는 오름 제례를 유지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과 연구자, 문화계 인사들이 오름의 신앙적 가치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름 제례 문화 복원 프로젝트', '자연신앙 체험 행사' 같은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어 희망적인 변화의 흐름도 감지된다.

이제 우리는 오름을 단지 ‘예쁜 풍경’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 오름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제주의 정체성과 기억이 축적된 살아 있는 문화 공간이다. 그 위에서 이루어졌던 기도와 제례, 공동체의 호흡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품고 있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태도, 공동체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 오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이며, 지금도 조용히 우리에게 그 의미를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