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은 많은 이들에게 눈과 스키, 그리고 동계올림픽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깊은 골짜기와 산등성이 너머에는 수천 년을 품어온 전통의 맥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나는 올해 가을, 그 고요한 시간의 언저리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평창군 진부면의 한 작은 산촌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에서 10월 무렵,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산신께 제를 올리는 ‘산신제’가 엄숙히 거행된다.
산신제는 단지 산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그것은 한 마을의 생존을 위한 기원이자, 세대를 이어온 믿음의 의식이며,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약속을 건네는 시간이다. ‘산신’은 단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농사와 날씨, 건강과 안전을 좌우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지며, 산신제를 준비하고 맞이하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그 신념만큼은 결코 상징이 아님을 말해준다.
나는 이번 체험에서 단순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제사를 ‘관람’한 것이 아니라, 그 준비와 기다림, 제의의 절차 하나하나에 함께 발을 담그며, 산신제가 담고 있는 정서와 공동체의 심리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문서나 뉴스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민속’ 그 자체였다.
이 글에서는 내 체험을 중심으로, 산신제를 준비하는 마을의 풍경부터 실제 제례의 전개, 신앙의 본질이 녹아든 장면들, 그리고 이 전통이 오늘날 어떤 과제와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네 개의 단원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산신제를 준비하는 마을, 공동체의 손과 마음이 모이다
산신제가 거행되기 약 일주일 전부터, 마을은 조금씩 특별한 리듬을 띠기 시작했다. 평창 진부면 두일리, 해발 700m에 위치한 이 조용한 산촌은 그 자체로 이미 시간의 흐름에서 한 발 비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이 산신제를 앞두고 바쁘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공동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산신제를 준비하는 첫 단계는 제단인 ‘산신각’의 정비였다. 산신각은 마을 입구에서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약 20여 분 오르면 나타나는, 작은 나무 건물이다. 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은 이끼와 낙엽으로 덮여 있었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는 마치 오래된 무언가를 깨우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여긴 신이 머무는 곳”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의 진심을 산신각 앞에서 처음 실감했다.
낡은 기와지붕, 손때 묻은 나무기둥, 그리고 산짐승이 쌓아놓은 듯한 돌무더기 속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솔가지로 땅을 쓸고, 이끼 낀 바위를 닦았다. 이 작업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정화’였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연에게 예를 갖추는 행위이자, 신을 맞을 준비였다.
이어지는 제물 준비는 그 자체로 축제의 한 장면 같았다. 마을 부녀회에서는 새벽부터 모여 들기름에 더덕을 무치고, 시루에 갓 빻은 햅쌀을 올려 떡을 쪘다. 돼지고기는 마을에서 직접 도축해 손질했고, 생선은 청정 계곡에서 잡은 송어로 대신했다. 모든 재료는 말 그대로 ‘마을의 산물’이었다. 정성으로 빚은 그 음식들은 하나같이 반듯하게 담겼고, 그릇의 모양이나 배열에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규칙이 적용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술 익히는 이는 술을 보고, 나물 무치는 이는 손맛을 더했다. 준비는 ‘노동’이 아니라 ‘예배’에 가까웠다. 나이 든 어르신의 주름진 손과 어린 아이의 눈빛이 같은 리듬으로 조화를 이루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전통이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라는 걸 깨달았다.
산신제를 올리는 순간, 신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산신제가 거행된 날 아침, 나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4시에 산길을 다시 올랐다. 이른 새벽 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웠고, 내 숨소리조차 안개 속에 묻히는 듯한 정적이 깃들어 있었다. 주민들과 함께 산신각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경건함 그 자체였다. 이 길을 따라 걷는 순간부터, 일상과는 다른 ‘경계선 너머’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산신각에 도착했을 때, 제단 앞에는 이미 향불이 피워지고 있었고, 준비된 제물들이 나무 상 위에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이장님과 제관은 흰 도포를 입고 정좌해 있었으며, 얼굴엔 긴장과 숙연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등불 하나 없이 초의 불빛만으로 밝히는 공간은 마치 시간 자체가 멈춘 듯했다. 제례는 정확히 해 뜨기 직전에 시작되었다.
먼저 제관이 낭독한 축문은 묵직한 목소리로 산속에 울려 퍼졌다. “산을 지키는 크신 신이시여, 이 땅을 사는 우리가 올립니다”라는 문장이 나오자, 사람들의 고개가 조금 더 깊이 숙여졌고, 나는 그 순간 이 의식이 단지 형식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경외’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례는 절차대로 진행되었지만, 하나하나의 동작에 담긴 마음이 남달랐다. 한 사람의 절이 끝날 때마다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을 어르신들이 불러낸 ‘산신가’였다. 낮고 깊은 소리로 시작된 그 노래는 반복되는 가락 속에 사계절의 풍경과 삶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산이여, 나무여, 바람이여. 우리를 지켜주시오”라는 가사에 이르면,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고요한 새벽 산속에 떨리는 목소리들이 모여 진심을 쌓아올렸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례 마지막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절하는 ‘합동 절례’였다. 나는 그 끝자락에 조용히 섰고, 나도 모르게 두 번 절을 올렸다. 그것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삶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고, 사람과 자연 사이에 다시금 다리를 놓는 몸짓이었다.
전통과 현대 사이, 산신제를 지키는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
산신제가 끝나고 산을 내려오는 길,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가득 차 있었다. 마을회관에서는 공동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고, 앞서 제물로 사용한 일부 음식들이 정갈하게 나뉘어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 소박한 식사 자리에서 나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통을 지켜간다는 것이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바빠서 못 오지만, 그래도 한 해라도 제를 못 올리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 제사는 계속될 거야”라며 희미하게 웃으셨다. 그 미소는 다정하지만 단호했다.
실제로 산신제 준비의 중심에는 60~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있었고, 젊은 세대의 참여는 눈에 띄게 적었다. 그러나 지역 문화재단과 지자체는 산신제를 평창의 대표 민속행사로 보호하고자 무형문화재 지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를 현대적인 축제와 체험 행사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나는 이 산신제가 그 본래의 정체성과 진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왜냐하면 이 제례가 단지 ‘옛날 방식의 신앙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며, 인생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점점 혼자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산신제에서 본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만든 공동의 시간이,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조용히 상기시켜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다시 산신제를 찾게 될 때, 여전히 그 노래가 산 속에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명절 풍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상 대신 마을신? 충남 보령의 ‘동제’ 풍습 (0) | 2025.07.05 |
---|---|
제주 무속의 핵심 의례, 신당제란 무엇인가? (0) | 2025.07.05 |
전북 익산의 ‘백제혼례재현제’, 전통 혼례의 살아있는 감동 (1) | 2025.07.04 |
경북 청송의 ‘도깨비 설날’, 아이들의 웃음 속에 피어나는 마을의 설날 (0) | 2025.07.04 |
경남 밀양의 ‘얼음제’ 풍습, 겨울에도 제사를 지내는 이유 (0) | 2025.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