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날을 가장 큰 명절로 여기지만, 경상북도 영주 부석면의 일부 마을 주민들에게는 설날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 날이 존재한다. 바로 부석사에서 열리는 삼신제(三神祭)이다. 이 제의는 특정 불교 종파의 행사도, 단순한 민속의례도 아니다. 부석사 삼신제는 천 년 가까이 이어진 지역 공동체의 믿음, 불교의 화엄사상, 토속 여성신앙이 결합된 복합적 의례로, 종교와 생활, 정성과 영성이 맞닿은 전통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삼신제는 부석사에서 열리고, 이때가 되면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절을 찾는 외지인들까지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동체로 모인다. 이 제의는 부석사 승려와 인근 마을의 제관(祭官)들이 수백 년간 함께 준비하고, 함께 참여하며 전승해 온 ‘살아있는 신앙 문화’이다. 절과 마을, 승려와 일반 주민, 불법(佛法)과 민속신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의례는 정신적 설날, 혹은 마음을 정비하는 날로 여겨질 만큼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부석사 삼신제의 유래와 역사, 실제 의례의 모습, 그리고 오늘날에 남은 문화적 가치를 총 4단원에 걸쳐 정리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설날보다 더 오래되고 신성한 이 의례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자.
삼신제의 유래 – 불교와 민속신앙의 만남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 화엄종의 선구자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한국 불교사에서도 손꼽히는 화엄사상의 본산이다. ‘부석(浮石)’이라는 이름은 ‘떠 있는 돌’이라는 뜻으로, 의상대사가 도를 닦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을 때, 신령스러운 돌이 그를 감싸 보호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부석사 자체가 이미 신성한 자연적 상징과 영적 기운을 품은 공간인 셈이다.
이런 장소에서 열리는 삼신제는 단순한 절의 행사로 보기 어렵다. ‘삼신(三神)’은 전통 민속신앙에서 생명과 출산, 집안의 평안을 관장하는 여성신으로, 일반적으로 ‘삼신할머니’라 불린다. 원래는 가정 안에서 행해지는 가정신앙의 일환이었으나, 부석사에서는 이 삼신이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령, 천지신명을 품은 초월적 존재로 격상되어 숭배되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삼신제가 단순한 신앙 혼합이 아닌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종교 융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삼신제는 음력 정월 보름 무렵, 즉 ‘새해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시기’에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이날을 단순한 절 행사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제사가 그 해의 액운을 막고, 마을 전체의 길운을 비는 진짜 새해맞이 의식이라 여긴다. 과거에는 삼신제를 소홀히 하면 집안에 병이 들거나, 농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주민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삼신제가 지니는 ‘불교 + 여성 민속신앙’의 결합 구조는 한국 종교문화 속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이며, 이 지역 불교가 얼마나 민중의 삶에 깊숙이 녹아들었는지, 그 생생한 증거가 된다. 그만큼 삼신제는 종교이자 전통이며, 동시에 지역공동체가 스스로를 정돈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회였다.
삼신제의 의식 절차와 현장 풍경
삼신제는 정해진 음력 날짜에 따라 거행되지만, 그 준비는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다. 준비 기간 동안 부석사 승려들과 마을 대표들은 함께 모여 제관(祭官)을 선출하고, 축문 내용, 제물 구성, 의식 순서 등을 꼼꼼히 조율한다. 이 회의와 조율의 과정 자체도 삼신제의 일부로 여겨지며, 이는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의식을 ‘함께 짓는다’는 인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제사의 핵심 장소는 부석사 경내 깊숙이 위치한 ‘삼신각(三神閣)’이다. 평소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이 공간은 삼신제 당일에만 문이 열리며, 문을 여는 행위 자체가 제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 된다. 삼신각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여겨지며, 안에는 삼신의 위패와 다양한 의례 도구, 부적, 고유한 복장이 정갈하게 보관되어 있다.
삼신제의 절차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 청정의례 – 제관과 승려들이 정결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을 씻고 향을 피우며 제의 공간을 정화한다. 이 의례는 공간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몸과 마음을 비우는 행위로 해석된다.
- 본제(本祭) – 삼신에게 본격적으로 제물을 올리고, 고문체 한문으로 작성된 ‘축문’을 낭독한다. 이 축문은 단지 청원서가 아니라, 신과 인간이 문장으로 교류하는 상징적 언어로 여겨지며, 삼신제 외에는 사용되지 않는 특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북과 목탁, 승려의 염불이 삼신각에 울려 퍼지며 의식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 회향의례 – 모든 제의가 끝난 후에는 제물을 공동체가 함께 나눈다. 승려와 주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앉아 떡과 과일, 술과 나물을 나누며 ‘신이 머무는 음식’을 함께 먹는 은혜로운 시간이 펼쳐진다. 이 순간은 단순한 연회가 아닌, 신과 인간이 음식을 매개로 교감하는 의식적 행위로 여겨진다.
삼신제의 현장은 장엄함과 일상적 따뜻함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북소리와 염불, 제물의 향기, 엄숙한 절차 속에서 사람들은 묵묵히 마음을 모으고, 그 끝에서 만나는 따뜻한 음식과 정겨운 대화는 공동체의 끈을 더욱 단단히 묶어준다.
현대에서의 의미 – 설날보다 깊은 ‘정신의 명절’
오늘날 삼신제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역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그 상징성과 전통성은 점점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고령화와 도시화로 마을 공동체의 결속이 약해지는 시대 속에서, 삼신제는 공동체의 기억을 회복하는 정신적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제사는 단지 옛 종교의식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 설날’로서 주민 개개인이 마음을 정돈하고, 집단적으로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는 의식이다. 설날에 차례상을 차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삼신제는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신령 앞에서 소망과 책임을 공유하는 집단적 다짐의 시간이다.
지금도 일부 마을에서는 설날보다 삼신제를 먼저 준비하고, 삼신제 제물을 준비하는 데 설 음식보다 더 많은 정성과 비용을 들이기도 한다. 어떤 주민은 삼신제가 끝난 뒤에야 집안 고사를 지낸다고 말할 만큼, 이 의례는 개인의 신앙을 넘어 마을 전체의 운세를 조율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외지인들 역시 이 특별한 분위기에 매료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삼신제를 보기 위해 일부러 영주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삼신제는 불교와 민속이 결합된 유산이면서, 동시에 정서와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문화 콘텐츠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의식이 단지 ‘옛것’이 아닌 ‘지금도 유효한 가치’를 품고 있다는 증거다.
설날보다 소중했던 날, 부석사의 신성한 의례
부석사 삼신제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쌓여온 불교와 민속신앙의 조화,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 공동체와 자연 사이의 연결을 상징하는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이 제사는 설날보다 더 엄숙했고, 가족보다 마을 전체가 중심이 되는 진정한 공동체 명절이었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제의가 주는 공동의 리듬, 마음의 정갈함, 조화로운 삶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개별화된 삶 속에서, 이런 제의는 우리가 다시 공동체로 회귀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삼신제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마음의 설날', 혹은 공동체적 영성의 회복이다. 그 고요한 산사에서, 삼신각의 문이 열리고, 다시 제물이 오르고, 다시 마음이 하나로 모일 때—우리는 잊고 있던 본래의 삶의 자세를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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