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습

강릉단오제 속 '잊혀진 풍습' 3가지, 다시 살아난 전통의 숨결

mystory35663 2025. 7. 9. 05:03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에서 매년 음력 5월 단오 무렵에 열리는 강릉단오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국가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세계적인 민속 축제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제례 의식, 무속 굿, 전통놀이, 민속 공연, 지역 음식, 공예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단오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강릉단오제 속 잊힌 풍습, 복원하다

그러나 긴 역사 속에서 강릉단오제는 수많은 외적 변화에 직면해 왔다. 일제강점기의 전통 억압, 전쟁과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공동체 해체 등의 과정에서 많은 풍습이 사라지거나 기억에서 잊혀지는 아픔을 겪었다. 어떤 풍습은 몇십 년 이상 단절되었고, 어떤 것은 전승자가 없어 복원이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단오제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축제가 아니다. 축제를 이끌어온 지역 사회는 단절된 전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잊힌 풍습의 복원이라는 문화적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런 도전의 결실 중에서도, 최근에 복원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세 가지 전통 풍습 사례를 중심으로, 그 의미와 가치, 복원 과정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예술과 효심이 깃든 ‘단오부채’ 만들기의 귀환

강릉단오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기념품 중 하나가 전통 단오부채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단오 무렵, 한지에 문양을 그려 넣은 손부채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며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이 성행했다. 강릉은 한지와 대나무가 풍부한 지역 특성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부채 생산지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전통 공예 산업의 쇠퇴와 일회용 공산품의 확산으로 인해, 단오부채 제작 기술은 거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이에 강릉문화재단과 지역 공예 장인들은 협력해 ‘단오부채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 핵심은 ‘신사임당 부채 도안’을 중심으로 한 전통 염색 부채 제작 시연이었다. 신사임당은 강릉이 낳은 대표 예술가이자 교육자로, 그녀의 민화풍 그림과 꽃 문양은 단오의 정서와도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다.

오늘날 복원된 단오부채는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전통의 의미와 미학을 체험하는 문화 콘텐츠로 진화했다. 방문객은 천연 염료로 염색한 한지에 직접 붓을 들고 문양을 그려 넣고, 부채살을 조립하며 조선시대 공예의 숨결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아이들과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단오의 정성과 예술’을 직관적으로 전하는 체험으로 인기가 높다. 단오부채는 단절되었던 문화의 맥을 다시 이어주는, ‘손에 잡히는 복원 전통’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사라졌던 제의, ‘서낭당 천제’의 엄숙한 부활

강릉단오제의 기원은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라, 자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던 제의적 행사였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서낭당(성황당)에서 올리는 천제(天祭)였다. 이는 강릉지역 수호신인 산신령과 국사성황에게 드리는 제사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근대화와 도시 개발,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의 억압으로 인해, 서낭당 천제는 점차 자취를 감췄고, 그 기억조차 흐릿해져 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단오굿만 남아 있었고, 천제를 기억하는 지역 어르신들의 증언이 간헐적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제의 복원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다. 2002년부터 강릉단오제 추진위원회는 무형문화재 연구진, 지역 무속인, 종교 민속 전문가들과 협력해 천제 복원 프로젝트를 착수했고, 문헌 조사와 구술사 수집을 병행해 전통 제의의 구체적 틀을 다시 구성했다.

현재 천제는 단오제의 개막과 함께 치러지며, 장군신, 산신, 국사성황에게 축원문을 낭독하고 제주(祭酒)와 향, 제물, 청배를 올리는 전통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식은 아니지만,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단오제의 ‘정신적 뿌리’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복원 의례로 자리잡고 있다. 천제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강릉단오제는 더 이상 ‘놀이 중심의 축제’가 아닌, 제의-놀이-예술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적 문화유산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여성의 정화 의례, ‘창포물 머리감기’의 되살아남

예부터 단오에는 더위와 나쁜 기운을 떨쳐낸다는 의미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창포는 향이 좋고 독이 없어 민간에서는 머리카락을 검고 부드럽게 한다고 믿었다. 또한 머리를 감고 꽃잎을 꽂는 행위는 여성의 정결함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풍습은 조선시대 세시풍속화나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며, 단오의 대표적 여성 중심 의례로 기능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수도와 샴푸의 보급, 사적 공간 중심의 위생 문화 확산으로 인해 공동 우물가 문화와 함께 창포물 머리감기 풍습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에 강릉단오제에서는 단오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단오장 내에 ‘창포 체험장’을 복원형으로 구성했다. 전통 의복을 입은 여성들이 실제 삶은 창포를 준비하고, 그 향이 퍼지는 물로 머리를 감는 시연과 체험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창포물을 그릇에 떠서 손을 씻거나 머리를 살짝 감아보며, 조선 여성들이 체감했던 정화의식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 공간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여성 중심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공동체와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학자, 전통 의복 전문가들이 참여한 토크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창포물 감기 풍습이 지닌 젠더적, 의례적 의미에 대한 담론도 함께 확장되고 있다.

 

천 년을 이어온 축제, ‘강릉단오제’의 시간 속으로

강릉단오제는 과거를 답습하는 축제가 아니다. 이 축제는 끊어진 전통을 다시 잇고, 사라진 문화를 새롭게 복원하며, 지금 세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진화하는 문화 플랫폼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단오부채 제작 시연, 서낭당 천제, 창포물 머리감기는 모두 수십 년간 잊혔던 전통이 복원을 통해 다시 ‘현재화’된 사례다.

이러한 복원은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로 만드는 과정이다. 복원을 통해 강릉단오제는 더 깊은 정신성과 풍부한 체험성을 갖추게 되었고, 외지인과 세계인에게도 한국 전통문화의 다양성과 정서를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지역민이 주도하고,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이 복원 방식은 문화 지속 가능성의 모델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전통은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전통은 기억 속에서 실천으로, 실천에서 오늘의 감동으로 다시 살아난다. 강릉단오제는 그 생생한 예다. 잊힌 풍습은 복원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함께 살아가는 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