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습

정월 대보름보다 깊은 제사의 날, 강원도 ‘산촌제’의 풍습

mystory35663 2025. 7. 12. 07:17

강원도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깊다. 눈이 마을을 덮고, 나무는 그 가지 끝까지 얼어붙는 계절, 그러나 바로 그 속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이 모이는 날이 있다. 대도시에서야 설날이 가족 단위의 차례로 치러지지만,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는 설 전후에 온 마을이 함께 지내는 의례, 이른바 ‘산촌제’(山村祭)가 존재해왔다.

 

눈 덮인 산골 마을에서 열리는 조용한 설맞이 풍습

 

‘산촌제’는 단순한 설맞이 차례가 아니다. 그것은 마을 전체가 조상과 산신(山神)에게 감사와 기원을 올리는 공동체 의례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던 행사였다. 특히 교통이 불편하고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야 했던 산촌에서는 개인의 차례보다 마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가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오늘날 도시화로 인해 많은 곳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강원도 일부 마을에서는 아직도 이 전통이 조용히 지켜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산촌제가 어떤 방식으로 지내졌고, 왜 대보름보다도 더 깊은 의미를 가졌는지, 그 문화적·신앙적 뿌리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산촌제의 유래, 조상과 산신에게 올리는 공동의 기원

산촌제는 이름 그대로 ‘산촌(山村)’에서 지내는 제사다. 그러나 이 제사는 단지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이 조용히 전통을 이어가는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산촌제는 고대 자연 숭배, 조상 제례, 산신 신앙이 결합된 복합적 민속 의례다. 강원도 산간 지역은 지형적 특성상 늘 자연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산을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고 산신에게 의례를 올려왔다.

특히 설날 전후는 계절의 전환점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시기로서의 의례적 가치가 매우 컸다. 마을에서는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일정한 날짜를 정하고, 제단은 마을 어귀의 당산이나 산자락의 큰 바위 앞, 혹은 마을 고목 아래에 마련되었다. 이곳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대부분 마을에서 덕망 있는 어른이 맡았고, 주민들은 각각 음식을 준비해 제물로 바쳤다.

산촌제의 가장 큰 특징은 가문별 차례와 달리, 마을 전체가 하나 되어 함께 기도한다는 점이다. 이는 공동체 중심의 농경문화,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신앙 체계 속에서 형성된 의례였다.

 

산촌제의 절차와 상징, 설날보다 먼저 열리는 기도의 시간

산촌제는 준비부터 엄숙하게 진행된다. 의례가 시작되기 전날 마을 전체에서는 금기(禁忌)가 적용되어 고기나 술을 멀리하고, 제단이 설치될 장소는 깨끗이 청소된다. 보통 제물은 밥, 나물, 떡, 생선 대신 말린 산나물, 곡식, 그리고 술 한 잔이 기본이다. 이는 자연의 선물로 조용하게 제를 올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례는 보통 새벽녘 혹은 일출 직전에 진행된다. 먼저 마을 대표가 산신에게 절을 올리고, 이어서 조상과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제문을 낭독한다. 제문에는 ‘한 해의 풍년과 무탈함’, ‘마을 아이들의 건강’, ‘재난 없는 평안한 계절’ 등이 빠짐없이 담긴다. 이어서 주민 모두가 차례로 절을 올리고, 음식을 나눠먹는 ‘음복’ 시간이 이어진다.

산촌제는 눈이 덮인 산골에서 진행되는 만큼, 분위기는 장엄하고 정적이며, 마치 자연과 직접 교감하는 듯한 의식적 경험을 안겨준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촌제를 설날보다 앞서 지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설날은 개인의 날, 산촌제는 마을 전체를 위한 날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왜 산촌제는 정월 대보름보다 더 중요했을까?

전통적으로 정월 대보름은 달의 신에게 한 해의 복을 비는 날로, 각 지역마다 다양한 세시풍속이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의 산촌에서는 이보다 앞선 설날 즈음의 산촌제가 더 신성하고 중요한 제사로 여겨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산속 마을은 달보다 산을, 별보다 바람과 물의 흐름을 더 가까이 느끼며 살았기 때문이다.

설날 무렵은 눈이 많이 내리고 생계와 직결된 봄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마을에 사고나 병이 나면 농사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산신에게 조기에 복을 비는 제사를 올려야 했던 실용적 이유도 있었다. 실제로 산촌제 후에 사고가 나거나 가뭄이 들면, 마을 어른들은 “산신께 정성을 다하지 못한 탓”이라며 다시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또한, 설날은 친가 중심의 가정 제사가 중심이 되지만, 산촌제는 마을 전체가 생존과 안녕을 위해 함께 올리는 공공의례였기에 주민들의 마음속에서 정월 대보름 이상의 상징성과 실질적 효용을 지닌 명절로 인식되었다.

 

사라져가는 산촌제, 그러나 여전히 남은 의미

지금은 전국 대부분의 마을에서 산촌제가 사라졌다.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핵가족화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공동체 중심의 전통 제사는 설날 차례나 추석 제사로 흡수되거나 생략되었다. 그러나 강원도 일부 깊은 산간 마을, 예컨대 인제, 평창, 정선, 화천 등지에서는 지금도 산촌제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으며, 문화재로서의 보호를 받거나 지역 축제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현대화되고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산촌제와 같은 전통 의례가 자연 친화적, 공동체 중심 사회로 회귀하려는 흐름 속에서 생태문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청소년 대상 전통체험 교육, 마을 신앙 답사 프로그램, 농촌 유학과 연계한 생태제례 체험 등이 좋은 예다. 이는 산촌제가 단지 옛사람들의 미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지혜의 표현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산촌제는 이제 더 이상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조화, 공동체의 연대, 그리고 조상에 대한 예(禮)의 정신이 지금 이 시대에도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계승이 아닐까. 산촌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