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은 많은 이들에게 눈과 스키, 그리고 동계올림픽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깊은 골짜기와 산등성이 너머에는 수천 년을 품어온 전통의 맥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나는 올해 가을, 그 고요한 시간의 언저리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평창군 진부면의 한 작은 산촌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에서 10월 무렵,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산신께 제를 올리는 ‘산신제’가 엄숙히 거행된다. 산신제는 단지 산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그것은 한 마을의 생존을 위한 기원이자, 세대를 이어온 믿음의 의식이며,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약속을 건네는 시간이다. ‘산신’은 단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농사와 날씨, 건강과 안전을 좌우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지며, 산신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