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습

도새기굿 – 돼지를 바치는 의식, 그 경건함에 대하여

mystory35663 2025. 7. 25. 07:57

제주도에는 여전히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이 존재한다. 관광지의 화려한 이미지 너머, 이 섬에는 삶의 위기마다 신에게 길을 묻는 이들이 많고, 그 중심에는 무속 의례가 자리한다. 특히 ‘도새기굿’은 제주 무속의 정수로 불리는 상징적 굿이다. 외부인의 시선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이 의례는, 실제로는 삶의 전환점에서 신에게 간절함을 전달하는 매우 실천적인 문화이다. ‘도새기’는 제주 방언으로 돼지를 뜻하며, 돼지를 제물로 올리는 이 굿은 인간의 기도와 자연의 생명이 맞닿는 의식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단순한 문화 체험이 아닌 실제 도새기굿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돼지를 바친다’는 말에 당혹스러움이 앞섰지만, 의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그 안에 담긴 정서적 깊이와 공동체의 울림이 피부로 느껴졌다. 제주 굿당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번 글에서는 도새기굿의 상징성과 절차, 참여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바탕으로, 이 전통 의례가 어떻게 여전히 살아있는 문화로 기능하는지를 풀어보려 한다.

 

도새기굿의 실체 : 생명 제물로 엮인 인간의 간절함

도새기굿은 단순한 무속 행위가 아니다. 이 의례는 인간의 간절함을 생명이라는 강렬한 상징에 담아 신에게 전달하는 제의다. '도새기'는 돼지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며, 굿의 핵심은 바로 돼지를 직접 잡아 신 앞에 바치는 데 있다. 다른 지역의 굿이 곡물이나 술, 과일 등의 제물을 사용하는 데 비해, 도새기굿은 구체적인 생명을 바친다는 점에서 상징적 무게가 남다르다. 제주에서는 질병, 가정의 불화, 사업 실패, 불임, 운세의 전환점 등 중대한 인생의 고비 앞에서 이 굿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굿을 주관하는 무속인, 제주에서는 ‘심방’이라 부르는데, 그들은 의식 전날부터 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기도를 드린다. 굿날 새벽, 제물을 위해 선택된 돼지가 마당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짧은 침묵에 들어간다. 이 돼지는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라, 마치 사람의 소망을 짊어진 존재처럼 여겨진다. 제물이 삶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며, 의식은 그 자체로 경건해진다. 이는 제주 무속이 단지 과거의 미신이 아닌, 실존적 문제를 다루는 문화적 치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새기굿 – 돼지를 바치는 의식

 

굿당의 분위기와 심방의 존재감

굿이 펼쳐지는 공간인 굿당은 제주에서 ‘신이 머무는 장소’로 여겨진다. 마을 어귀나 바닷가 절벽 근처, 때로는 누군가의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굿당은 그 자체로 신성과 자연이 공존하는 구조다. 내가 참여했던 굿당은 서귀포 외곽의 작은 마을에 있었고, 들어선 순간부터 공기의 밀도가 달랐다. 벽과 천장에는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천이 층층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 제물과 부적, 방울, 북, 칼, 깃발 등이 정갈하게 배치돼 있었다.

무속인 심방은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흰 옷을 입은 채, 조용히 준비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북을 세 번 울리는 순간, 공간의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됐다. 방울 소리와 북소리, 주문이 뒤섞이며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의 심방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신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매개자였고,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전달’이라는 의미가 묻어 있었다. 굿당을 채운 정적과 고조된 긴장감 속에서 사람들은 묵묵히 제물 앞에 절을 하며, 각자의 소망을 속으로 되뇌었다.

 

경계의 붕괴 : 신과 인간, 생명과 죽음 사이

굿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의식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돼지를 잡고, 심방은 삶은 고기를 정성스럽게 손질하여 신상 앞에 올렸다. 그 과정은 잔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경건하고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집중했다. 그 생명을 통해 전달될 간절함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의식 도중 심방은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 주문을 읊조리며 격렬한 몸짓을 취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사람들은 하나둘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한 가족이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리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는 자녀의 병을, 누군가는 가정의 평화를, 또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바라고 있었다. 신이라는 존재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공간 속에는 무언가 거대한 감정이 뭉쳐 있었다. 도새기굿은 돼지를 신에게 바침으로써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신에게 나눠주는 행위였고, 의식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도와 정화의 기운이 번져갔다.

 

공동체의 회복과 도새기굿이 남긴 울림

굿이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은 함께 둘러앉아 수육과 밥, 떡을 나눠 먹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제물로 사용된 돼지를 함께 나눠 먹는 행위는 의례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공동체적 순환이었다. ‘누군가의 소망을 함께 나눈다’는 상징이 이 식사에 담겨 있었고, 처음엔 어색해하던 외지인 나조차도 자연스럽게 그 대화와 웃음 속에 섞이게 되었다. 굿은 신을 위한 제례인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단절된 감정을 연결하는 사회적 장치였다.

도새기굿은 충격적인 장면들로 구성돼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 본연의 정서와 신을 향한 존중,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깊은 교감이 있다. 이 굿을 통해 제주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고비를 넘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함께 간절해지는 경험’이 이 의례를 통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은, 도새기굿이 단지 전통을 넘어선 회복의 상징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울림은 제주를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